| [주진의 세계여성정치]<5>독재 뚫고 희망일군 ‘페루’ 여성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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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2. 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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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주진 기자] 마추피추 유적, 쿠스코, 나스카 라인 등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있는 잉카 문명의 나라. 유럽의 오랜 식민 지배로 가톨릭과 스페인 문화가 뿌리박혀 있지만, 원주민 인디오계가 대다수인 나라. 면적은 한반도의 6배에 달하지만 인구는 절반인 나라. 바로 페루입니다.
페루 역시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5년 동안 지속된 독재에 대항해 80만명이 목숨을 잃어가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입니다.
이처럼 인권과 평등,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식이 강한 나라인 만큼 페루 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여성운동과 여성정치도 선진국 못지않게 일찍부터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국제의원연맹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페루의 여성 의원 수는 전체 120명 중 35명, 29.2%로 세계 20위에 올라 있습니다.
페루는 1955년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해 한국보다 10년이나 뒤졌지만 현재 중요한 정책 결정에 여성의 참여 정도를 가늠해 보는 유엔 여성권한척도(Gender Empowerment Measure)는 한국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여성에게 모든 공직의 25~30% 할당을 의무화한 성 쿼터제 도입이 이런 발전의 밑거름이자 촉진제 역할을 했습니다.
페루의 여성운동과 여성정치는 아이러니하게도 후지모리 독재 정권 시대인 1990년대 급진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이는 여성권익 운동이 시민인권 운동과 민주화운동 영역에서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이지요.
“여성을 위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페루의 여성단체들은 공직과 정치에서의 여성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1995년부터 96년까지 2년 동안 성 쿼터제 도입을 명시한 선거법 개정을 이슈화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5월, 선출직·공직 등에서 남녀 어느 성이라도 최소 25%를 차지하도록 한 성 쿼터제가 도입됐고, 2001년엔 30% 의무화가 통과됐습니다.
성 쿼터제가 도입된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는 1995년 10.8%에 불과하던 여성 의원 비율이 2000년 21.7%로 급증했습니다. 관리직 여성 공무원의 비율 역시 2002년 23.8%를 차지하는 등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2006년 출범한 알란 가르시아 정부는 초대 내각 구성 당시 전체 각료 16명 중 6명을 여성으로 채우고, 특히 법무, 내무 등 핵심 부서에 사상 첫 여성 장관을 임명했습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여성 기용은 대선에서 가르시아와 접전을 펼쳤던 여성 후보 로우데스 플로레스를 의식한 것이란 의견이 많습니다.
2001년과 2006년 두 차례 국민단일동맹당(UN)의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플로레스는 변호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90년대 후지모리 독재 타도에 앞장섰던 민주투사입니다.
2001년 대선에서 그는 “페루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뽑아 부패와 가난의 시대를 몰아내고 투명성과 자유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자”라고 역설하며, 여성과 중산층을 파고들었지요. 그러나 세계은행 고위 관리까지 지낸 톨레토 후보와 지지층이 겹치면서 박빙의 승부 끝에 석패했습니다. 톨레토 역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변호사 출신 베아트리스 메리노를 페루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임명한 바 있습니다.
이후 2006년 대선에 재도전한 플로레스는 1차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선전했지만, ‘반 차베스 정서’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인민혁명동맹(APRA) 가르시아 후보에게 아깝게 패했습니다.
현재 가르시아 대통령은 헌법상 연임금지 규정에 따라 2011년 대통령 선거에는 출마할 수 없지만 2016년 차차기 대선에 나서 정권 재창출을 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성 쿼터제 도입으로 여성정치는 안정적인 성장세에 접어들고 있지만, 가톨릭 문화에 바탕을 둔 뿌리 깊은 가부장제는 여전히 양성 평등한 여성정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바로 빈곤입니다.
현재 페루는 부채액이 300억 달러에 달하고, 전체 국민의 절반이 하루 1.25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생활을 이어갈 정도로 남미 최빈국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빈곤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페루에선 해마다 영아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고, 빈곤층 여성과 어린이들은 교육과 문화, 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돈벌이에 나서고 있습니다.
양성 평등한 법과 제도는 진일보했지만, 빈곤에 발목 잡힌 페루의 여성운동과 여성정치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주진 기자 jj@asiatoday.co.kr >
아시아투데이
http://www.asiatoday.co.kr/news/view.asp?seq=446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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