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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W 총회에 초청된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강경화 부대표
2012. 09. 24
18일 정오, 제33차 세계여성단체협의회(ICW) 총회가 한창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로비에서 총회에 초청된 강경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를 만나는 순간, 돌연 시곗바늘이 17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싱그러운 초록빛 재킷에 생기발랄한 커트 머리는 반백에도 불구하고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유엔세계여성회의장을 누볐던 40대 초반의 그를 떠올리게 했다(당시 그는 정부·NGO 대표단의 대변인으로 일본군위안부 이슈를 크게 부각시켰다). 그 스스로 인생 최대 터닝 포인트라 여기는 베이징 여성대회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그가 과연 가능했을까.

95년 베이징여성대회 계기로 여성인권에 큰 관심

그는 잘 알려져 있듯이 유엔 내 한국 여성으로서는 최고위직(ASG 사무차장보)에 올라 롤 모델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여성들이 그에게서 용기를 얻는 것은 어떤 한 시점을 계기로 특별한 도전을 거쳐 성취해낸 특별한 이력일 것이다. KBS 영어방송 PD 겸 아나운서로 출발해 박사학위(미 메사추세츠대 대학원 커뮤니케이션학)를 따서 귀국했으나 그 보답으로 돌아온 것은 5년간의 고된 시간강사 생활이었고, 그것도 3남매의 육아문제로 포기해야 했다. 이후 교수가 됐으나(세종대 영어영문학과 조교수) 꿈을 향해 2년여의 교수 생활을 과감히 접고 외교관으로, 국제기구 전문가로 급선회했다. 국회의장 국제담당 비서관을 거쳐 비(非)외무고시 출신이란 약점을 딛고 외교부 국제전문가로 발탁돼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외교통상부 장관 보좌관(3급)으로 임명되는 등 줄곧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엔 대통령의 통역사로 활약,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내 말이 그를 통해 영어로 번역되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 위원장을 2년간 역임하면서 유엔에 강한 인상을 주었다. 2007년 1월 제네바에 본부를 둔 OHCHR의 부대표로 임명돼 매번 임기가 연장돼온 그는 올해 연말에는 임기를 마칠 계획이다. 늘 “(인권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그가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것은 현장조사단장을 맡았던 시리아 사태. 그는 시리아 사태에 대해 “재스민 혁명으로 아랍권에 봄이 오면서 인권이 일취월장했다면 이번 시리아 사태는 전체 인권이 겨울로 되돌아가는 듯한 절망감을 준다”고 단적으로 표현했다.

“성폭력, 인권 넘어 평화·안보 의제로 여겨야”

“우리가 직·간접으로 접하는 모든 정보를 판단해 볼 때 이제는 정부군뿐만 아니라 반군에서도 인권유린 상황이 일어나곤 한다. 그중 큰 문제는 피해자 입장에서 쉽게 폭로하지 못하는 문화적 분위기를 악용해 성폭력이 전쟁의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남성들조차도 고문의 수단으로 성폭력을 당하곤 한다.”

전쟁 혹은 분쟁 중 성폭력 문제는 유엔 인권이슈의 핵심이다. 상대편을 제압하기 위한 가장 잔혹하고 치졸한 전략일 뿐 아니라 성폭력을 당하는 공동체 전체에 심각한 패배감을 안겨주며 해체를 부르는 후유증을 낳기 때문이다.

“2년 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20일에 걸쳐 6개 지역을 순회하며 성폭력 문제를 탐사했다. 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 반군이 쳐들어와 민간인들을 볼모로 잡고 집단 강간과 방화를 저지르곤 했다. 현장에서 만난 피해 여성들은 ‘딴 거 다 필요없다, 평화를 달라!’고 절규했다. 일자리, 식량, 주거 지원을 해도 반군이 오면 하루아침에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성폭력이 이 정도로 인간의 삶을 뿌리째 파괴시키는 수준이면 이건 인권의 문제를 넘어선 것이다. 평화와 안보의 문제로 직결되는 이슈다. 그래서 유엔 안보리도 성폭력을 정기적으로 의제화해 이를 정식 논의하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신념은 단호하다.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폭력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절 의지를 가진 책임 있는 정부와 국제사회의 지원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올해 4월 남부아프리카 첫 여성 대통령이 된 조이스 반다 같은 이들의 리더십에서 희망을 본다. 의사 출신으로 부통령이었던 반다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면서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2014년까지 말라위를 통치하게 됐다.

“반다 대통령은 나와의 면담에서 자신의 일차적 로열티는 자국 국민이지 국제사회가 아니라며 ‘국제적 스탠더드만 가지고 내게 얘기하지 마라. 우선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국제 수준에도 이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항변했다. 말라위는 전임 대통령 시절인 2009년 정부 공식 행사장에서 동성애자 남성 군인들이 공개적 세리머니를 펼쳤고, 이것이 국법상 범죄행위로 간주돼 이들 모두 9년형을 선고받아 동성애 인권활동가들이 주목하는 나라다. 반기문 사무총장님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 군인을 석방시키는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말라위에선 동성애 공개를 곧 범죄로 여기는 법 자체가 고수되고 있다. 반다 대통령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말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 가서 이에 대해 ‘이제는 이 법을 재고해야 할 때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는 말을 용기 있게 했다.”

그가 한국의 인권 상황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여성과 아동에 대한 크고 작은 폭력이 너무나 쉽게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다.

“여성의 문제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제, 그리고 동시에 가장 오래 갈 듯한 문제일 것이다. 여성을 위해 인구 반의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얘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원주민 등 다른 취약 계층은 여성보다는 좀 더 협소한 범위에 속하기에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포기하기가 좀 더 쉽다. 여기에 아랍권에서처럼 여성의 보호만 외칠 뿐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관습도 문제다.”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에서 채택된 역사적 행동강령 중 많은 부분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각국의 기존 법에서 성차별적 조항을 다 철폐하라며 2000년까지 5년의 유예기간을 준 것 자체가 지금 돌이켜보면 장밋빛 낙관주의였다고 그는 자조하기도 한다. 그는 CSW 시절 이처럼 행동강령 불이행 부분만 다루는 특별고문관제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려 노력했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히곤 했다. 그러다가 OHCHR 부대표가 되면서 드디어 2년 전에야 각국 정부 간 인권이사회에서 차별적 법 조항에 대한 워킹그룹과 특별고문관제를 만드는 시스템을 이뤄냈다. 실질적 실현을 위한 10여 년의 집념이 빚어낸 결과다.

현재의 유엔이 그 어느 때보다 성주류화된 조직으로 성장한 데 대해 그는 주저치 않고 반기문 총장의 리더십을 꼽는다. 사무총장 선거 당시 ‘여성’ 사무총장을 뽑자는 캠페인이 일었지만 지금은 어느 여성 리더도 반 총장의 성인지적 리더십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반 총장은 역대 사무총장 중 가장 많은 여성을 고위직에 임명했고(부총장은 그의 공약대로 여성인 탄자니아 외무장관 출신의 아샤-로스 미기로를 임명했다), CSW 회의를 꼭 챙겨 참석하는 보기 드문 열의를 보여주었다. ‘유엔여성’ 역시 반 총장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가장 힘든 건 유엔식 조직 운영… 등산하며 참선하듯 살아”
그와 대학·대학원생인 두 딸은 스위스 제네바에, 아들은 미국 보스턴에, 그리고 남편(이일병 연세대 공대 교수)은 서울에 산다. 그야말로 글로벌 가족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관심과 고민은 성공적인 조직 운영에 집중돼 있는 듯하다.

“유엔에서 제일 힘든 게 인사와 관리문제다. 너무나 다양한 국적과 문화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기에 사소한 데서도 오해와 불신이 쌓이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나름 원칙을 세웠다. 직원에게 신뢰를 계속 쌓고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하며, 사소한 것이라도 직원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불교식의 참선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곤 한다고 한다. 등산을 하면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 모든 것이 다 큰 틀 안에서 보면 ‘작은 일’”이라고 스스로 되뇌곤 한다. 오늘의 스트레스를 절대 내일로 끌고가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가장 큰 치유법은 “인권을 위해 오늘도 뛴다”는 뿌듯한 보람이다.

그와 헤어지면서 롤 모델로서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부탁했다.

“난 정무직으로 발탁돼 여기까지 온 경우라 귀감이 되기에 부족하다. 그래도 한마디 하라면 평소에 ‘준비’돼야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은경 기자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54754

201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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