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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2006. 11. 08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마츠이 야요리-


차주희(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연구원)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슴 속에 품고 평생을 살아왔다는 그녀, 마츠이 야요리가 바라 본 아시아는 무수한 발전결과물 이면에 여성이기에 고통을 지니고 살아야 했던 아시아 여성들의 삶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지금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있을 때쯤, 또 어디에선가는 여성들이 새우 양식장에서, 바나나 농장에서, 하루 1700원도 안 되는 임금을 받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아시아 이곳저곳을 발로 뛰며 여성들의 경험과 고통을 글로 담아내며, 그토록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여성들의 ‘엠파워먼트(empowerment)’, 즉 여성들이 스스로 힘을 길러 그동안 지배당하고 침략당하고 착취당했던 권력의 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관리하고 판단하는 힘, 여성인 것에 자신감과 긍지를 갖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힘, 차별과 핍박을 딛고 일어나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힘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여성들이 힘을 길러 스스로 일어설 때, 개발과 원조의 명목으로 얼룩진 거대한 세계화의 폭력에 저항하고 역사를 진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세기에의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1995년 가을의 유엔 세계여성회의에서 아시아의 많은 여성들은 ‘21세기를 향해서! 여성들의 엠파워먼트를!’ 이라는 기치 아래 억압과 폭력에 대한 힘을 폭발시키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도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정부개발원조나 다국적기업의 활동이 ‘빈곤의 여성화’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며, 이로 인한 ‘이주노동의 여성화’ 역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를 비롯한 남반구에서 대규모로 확산되고 있는 인신매매 피해와 여성들의 성 상품화 등은 자유시장경제 논리 하의 아시아 개발 모델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여성들 스스로가 다른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가 같은 여성으로서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여성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화와 경제개발이라는 실타래 속에서 서로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연결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마음대로 먹고, 새우로 식사를 하며, 종이를 물 쓰듯 쓰며 생활하지만, 동시에 어느 나라의 국민들은 이러한 수출량을 채우기 위해 삶의 터전과 직장을 잃고, 우리의 이십분의 일도 안 되는 하루 임금을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그들이 노동자 또는 성 산업의 노예로서 헐값에 팔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누군가가 그런 이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며, 이것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인 이유이다. 이것이 오늘날 아시아의 현실이기에, 우리는 의도치 않았더라도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되짚어봐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도를 넘어서서 우리가 새로운 아시아를 만들기 위한 여성 네트워킹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 속에서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으로 체포되었던 한명숙 국무총리의 당시 옥중 체험과 ‘위안부 문제’를 국제 문제로 확산시킨 윤정옥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나라 여성운동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보며,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여성들의 활약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우리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로서, 아시아 국가들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우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우월감과 동정에서가 아니라, 같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온 경험자로서 특히 여성들이 그들의 삶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도록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한 때이다.

 저자는 ‘열대우림이 삶의 세계라면, 유칼립투스는 죽음의 세계’라고 하였다. 즉, 남성성 중심의 근대가 구성한 파괴적인 세상을, 여성의 눈을 가지고 여성의 손으로서 살림의 세계로 변화시켜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합리성을 앞세운 세계경제의 흐름, 해외 이주 노동의 급속화, 군사화와 근본주의 등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의 여성들이 이제 서서히 그들의 힘을 모으고 있다.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진보논리, 자연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 지배적인 개발 모델을 주창하는 논리는 더 이상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여성적 가치가 보편화된 사회를 지향하고 여성, 환경, 민주주의가 삼위일체가 된 아시아를 일구어 나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자 우리의 과제이다.

 그 해결의 열쇠는 다름 아닌, 여성들의 힘이다. 서로의 고통을 보듬어 주고 격려해 주어야 할 부분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마츠이 야요리가 꿈꾸었던, 그리고 지금 아시아의 수많은 여성들이 꿈꾸고 있는 그런 새로운 삶의 터전의 모습일 것이다. 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이제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여성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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