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이달의 책]권력
2006. 11. 08
버트랜드 러셀의『권력』

이지운(전 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 연구원)

여성과 정치를 사유함에 있어 권력에 대한 탐구는 그 시작이자 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성이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추구해온 권력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역사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 여성들은 어떠한 권력을 창조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왜 정치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에 나름대로의 신념이 생길 무렵 버트랜드 러셀의 「권력」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러셀의 다른 저서들이 그렇듯이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개념에 대해 가장 일반적이고도 광범위한, 그러면서도 명료한 해답이 제시되길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권력에 대한 다양한 키워드 -권력에의 충동, 형태, 혁명, 설득, 조직, 개인, 철학, 윤리, 마지막으로 교육-를 가지고 러셀은 권력의 본질을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풀어나간다.

목적의식이 강한 독자라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내용을 축소시킬 위험이 있지만, 「권력」을 통해 얻고자하는 해답은 예상외로 그리 편협하지 않다. 러셀이 추구하는 권력의 궁극은 다음 문단에서 간단하게 묘사되고 있다.

“만일 어떤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은 세력을 소유한 네 명의 인물을 고르라면 나는 붓다와 그리스도, 피타고라스와 갈릴레오를 고를 것이다. 이 네 인물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의 선전이 굉장한 정도의 성공을 달성할 때까지는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네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생전에는 별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었다. 네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만일 권력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았더라면 인간의 삶에 그토록 많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사람 모두 다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그런 종류의 권력이 아니라 그들을 해방시키는 힘을 추구했는데-처음 두 사람의 경우에는 갈등으로 이어지는 욕망들을 극복하고 이어서 패배와 노예 생활과 정복을 이겨 내는 길을 보여 주었고, 다음 두 사람의 경우에는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길을 알려 줌으로써 그렇게 했다.”

러셀이 뽑은 세기 최고의 권력가는 종교적 신념과 진리를 추구한 인물들이다. 지나치게 일반적인 결론 같지만 그의 주장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것이 시대를 초월하여 지속되며 무한한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러셀이 추구하는 권력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러셀의 권력 철학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17장 ‘권력의 윤리’ 이다. 16장에서 피히테와 헤겔 그리고 니체의 철학을 “권력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의 옷으로 가리기 위해 이론을 지어낸” 것으로 비판하며 그들의 철학이 어떻게 현실에서 민족주의, 인종주의, 귀족주의를 옹호해 왔는지 보여준다. 그가 제시하고자 하는 권력 철학은 권력 자체에 대한 애착이 아닌 사회적인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사회적 삶을 위한 철학으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권력에 대한 애착이 정당화되는 조건으로 권력이 아닌 어떤 “다른 목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과 어떠한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목적 중 후자의 힘이 강해야 한다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우린 현실에서 그와 반대되는 권력가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두 번째 조건은, 어떠한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타인의 목적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 그가 추구한 권력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목적이 실현된 다음에 영향을 받게 될 다른 사람들의 욕망과도 조화를 이루며 어떤 목적과 연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목적과 수단의 크기인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파생하는 부정적 결과가 목적을 달성했을 경우 얻어지는 이득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현실 정치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권력 철학이 존중되지 못하는 예는 너무나도 많다. 전쟁을 예로 들면, 권력가에게 있어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희생은 국가가 달성하고자 하는 여러 이익에 비해 매우 하찮은 것으로 인식된다. 특정인들의 희생이 또 다른 특정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러셀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합리적인 태도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합리성을 벗어난 현실에 대한 대안은 제시되지 않는 것이 러셀의 권력 철학의 맹점일 것이다.

러셀의 논리를 충실하게 따라가자면, 권력의 본질을 이해하고 철학적 사유를 거쳐 윤리적 조건을 갖춘 정치가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을 길들이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러셀이 제시하는 권력을 길들이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은 1)정치적 여건, 2)경제적인 여건, 3)선전의 여건, 그리고 4)심리적 및 교육적 여건 이다. 앞의 세 가지 여건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지만 네 번째 ‘심리적 및 교육적 여건’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 사회가 권력에 대한 애착에 의해 빠져버린 “집단적 히스테리”적 상황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러셀이 제시하는 해답은 건전한 심리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이다. “민주주의가 기능을 발휘하려면 국민이 증오와 파괴로부터, 그리고 또한 두려움과 노예근성으로부터 가능한 한 자유로워야” 하며 정치적, 경제적 흥분에 쉽게 동요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회의주의와 독단주의의 중간쯤 되는 단계”인 과학적 기질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웅변에 대한 면역”을 길러야 하는 것인데, 이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 안에서만 가능하다. 러셀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대부분의 그의 저서의 결론에서 강조되는데 그의 권력 철학 역시 ‘자유주의적 교육에 대한 사명’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렇다면 러셀의 권력 철학은 여성과 정치의 관계에 어떻게 응용될 수 있을까? 제 1세대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 정치적 권력의 추구는 혁명과도 같았고, 제 2세대 페미니즘은 획득한 권력을 현실에 적용하여 법과 제도를 수정하는 과업을 수행한 것이라면, 제 3세대 여성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권력이란 과연 무엇을 목적으로, 어떠한 수단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러셀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심리적 교육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현재 여성들에게 남은 과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하고 경제적 힘을 기르고 사회를 설득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지금, 여성의 현실에서 아직 미성숙 단계인 ‘교육적 여건’을 마련하는 작업이야말로 여성이 권력을 온전히 ‘길들이기’ 위한 마지막 과제가 아닐까 한다.


* "이달의 책" 코너에 참여를 원하시는 회원님은 매달 첫째주와 둘째주 중에 저희 연구소로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책을 구매하여 배송해드립니다. - 신청방법: Tel) 02-3474-0738 또는 Email)     kiwp89@hanmail.net    
[이달의 책]여성이 만드는 아시아 [이달의 책]여성, 정치와 사랑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