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 내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미국의 1970, 80년대 수준인 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부그룹의 반도체 회사인 동부하이텍의 셔나 블랙 부사장(57·사진)은 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한국이 반도체 및 전자산업에서 글로벌 선진국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에는 여전히 장벽이 많고 주요 직책의 여성 비율도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블랙 부사장은 미국 텍사스대와 뉴멕시코주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1985∼2009년 세계적 반도체회사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반도체 생산 및 설비를 담당한 반도체 업계의 여걸(女傑).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특A급 인재 영입’ 특명을 받은 동부하이텍의 글로벌 인재 유치팀에 의해 스카우트돼 지난해 1월부터 동부하이텍의 생산·설비·안전·품질 총괄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블랙 부사장은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뒤 고교에서 수학과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 이후 27세 때 공대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미국도 1970년대까지 여성은 교사나 비서, 간호사 등의 직업에만 주로 종사했다”며 “1970년대 중반 이후 여성 운동이 활발해지고 여성도 다양한 직업에 진출하면서 새 학위를 받으러 다시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블랙 부사장은 자신이 몸담아온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을 넓힌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는 “공대에 다닐 때 여학생은 극소수였고 TI 입사 이후에도 첫 여성 팀장, 첫 여성 매니저, 첫 여성 임원 타이틀을 이어갔다”며 “조언을 구할 여자 선배가 없어 외로운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재직하던 TI에서는 1990년대 이후 여성 비중이 빠르게 높아져 현재는 여성 엔지니어가 25%, 여성 임원이 26% 수준에 이른다.
그는 여성이 직장에서 마음 놓고 일하려면 출산과 보육을 국가와 회사가 함께 책임진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육아시설도 부족하고 베이비시터를 구하기도 쉽지 않아 워킹맘에겐 정말 힘든 환경이라는 것. 블랙 부사장은 “한국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이슬람 국가보다 떨어진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동부그룹에선 오너인 김 회장이 여성 엔지니어와 관리자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올여름 충북 음성과 경기 부천 공장에 임직원 자녀 대상 어린이집을 열었고, 관리·연구직 여성 비율도 2009년 15%에서 지난달 말에는 18% 수준까지 높였다.
블랙 부사장이 합류한 동부하이텍은 현재 국내 유일의 ‘아날로그 반도체 전문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디지털 신호를 시각이나 청각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필수 장비다. 블랙 부사장은 “아날로그 반도체는 스마트TV와 스마트폰 보급이 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