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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병 혁파한 불굴의 리더십…20세기 최강 총리
2013. 04. 09
(사진 왼쪽부터) <1975년 남편과> 1975년 보수당 대표로 뽑힌 대처와 남편 데니스, <1979년 여왕과> 1979년 잠비아 루사카에서 열린 영연방회의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과 대처 전 총리, <1982년 레이건과> 1982년 백악관에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만난 대처.





`그가 곧 영국` 존경받은 88년 삶

식료품 가게 둘째 딸로 태어나 "여자가 무슨 정치냐" 편견 넘어
첫 여성 보수당 대표, 총리 기록
노조 파업에 맞서 공기업 민영화
레이건, 포클랜드전 협상 권유에 "알래스카 침공 당해도 그러겠냐"


다우닝가 10번지의 첫 여주인으로서 세계를 호령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8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영국 BBC방송은 “전 세계에 그가 곧 영국이었고, 영국이 곧 그였다”며 시대를 풍미한 ‘철의 여인’을 기렸다.

대처의 대변인 팀 벨 경은 8일 “대처의 자녀인 마크와 캐럴이 ‘오전 어머니가 뇌졸중 끝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해왔음을 슬픔과 함께 알린다”고 밝혔다. 대처는 2002년 뇌졸중 후유증 등으로 건강이 나빠진 뒤부터 공식석상에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치매도 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담낭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기도 했다.

대처는 1925년 영국 중부 링컨셔주 그랜섬에서 식료품집 둘째 딸로 태어났다. 풍요롭지 않은 가정환경이었지만 아버지 앨프레드 로버츠는 대처가 어렸을 적 시의원에 당선되는 등 노력만으로 정치에 입문해 딸의 존경을 받았다. 아버지의 자수성가를 보고 자란 대처는 43년 옥스퍼드대에 입학해 화학을 전공했다. 48년 대학을 졸업한 해에 보수당 당 대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발탁돼 50년 총선에서 입후보했다. 낙선하기는 했지만 보수당 유일의 여성 후보, 전국 최연소 여성 후보라는 기록을 세웠다.

뒤이어 결혼 뒤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열성적인 활동으로 “여자가 무슨 정치냐”는 보수파 간부들의 마음을 돌린 그는 58년 총선에서 런던 북부 핀츨리에서 입후보, 당선돼 의회에 입성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33세였다. 65년 에드워드 히스가 이끄는 보수당이 집권하자 주택장관, 재무장관, 교육장관 등을 지내며 화려한 공직 경험을 쌓았다. 74년 히스 정권이 무너진 것이 그에게는 기회였다. 75년 자신을 중용한 히스의 당권에 도전했고, 보수당 최초의 여성 대표가 되는 데 성공했다.

대처라는 여걸의 등장은 사실 영국의 경제·사회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종전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졌고,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큰 정부론이 득세하며 ‘영국병’이 나라 전체에 퍼졌다. 특히 대처 등장 직전인 78년 말에서 79년 초까지 영국 사회는 공공부문 노조원들의 대대적인 파업으로 혼란이 극에 달했다. 학교, 병원, 교통이 멈추며 사회 전체가 마비됐다. 이런 ‘불만의 겨울’은 노동당 몰락의 서막이었다. 야당인 보수당을 이끌던 대처는 노동당 정부의 짐 캘러한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했고, 79년 3월 28일 하원에서 불신임 투표가 이뤄졌다. 결과는 찬성 311표, 반대 310표. 이렇게 단 한 표 차이로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대처는 총리직에 오른 직후 전면적인 사회·경제 개혁을 시작했다. 그는 영국병 치료를 위해 근본적으로 환부를 도려내는 획기적인 개혁책을 펼쳤다. 전후 영국의 사회주의를 지탱하던 기둥인 노조의 요구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9개월 동안 탄광노조 파업에 강경하게 맞서면서 파업은 곧 임금 인상이라는 공식을 깼다. 또 공공지출 억제, 정부차입 축소 등 긴축정책을 펼쳐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경제 부흥에 힘썼다. 주요 국영 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과감한 시장주의 경제 도입 역시 그의 대표작이다. 경쟁과 검약, 자립 등이 대처리즘(Thatcherism)의 근본이었다. 대처는 “사회주의의 문제점은 결국 다른 사람의 돈을 축내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외교적으로는 철저한 친미, 반공 노선을 유지했다.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도 이 때문에 붙었다. 82년 영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찬 디저트로 소련식 버터와 빵이 준비된다는 소식을 듣고 소련식을 싫다며 이를 과일 샐러드로 대체했을 정도다. 특히 82년 4월 2일 시작돼 74일 만에 영국의 승리로 끝난 포클랜드 전쟁은 대처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당시 전쟁을 시작하며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해 두려웠다고 훗날 대처 스스로가 의회에서 밝혔을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절친한 친우이기도 했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제3자가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평화 협상안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대처는 “알래스카가 침공당했어도 같은 말을 했겠느냐”고 강경하게 맞서며 공격을 계속했고, 아르헨티나의 항복을 이끌어냈다.

경제 개혁을 통해 일궈낸 호황은 그가 15년 동안 이끈 보수당에 세 차례 연속 총선 승리를 안겨줬다. 총리 로 11년 동안 영국을 통치, 20세기 들어 최장 재임 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경제 부흥 정책 이면에서 빈부 격차 심화 등 부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대처는 80년대 후반 영국의 경제지표가 악화되며 자신의 감세정책을 허물고 저소득층에 불리한 인두세를 도입하려다 저항에 직면했다. 결국 90년 보수당 대표 선거 1차 투표에서 승리하지 못하자 대처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3.04.09
중앙일보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홈페이지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332/11172332.html?ctg=1300&cloc=joongang |home|top
20세기 ‘철의 여인’은 갔지만 … 21세기 메르켈이 바통 나눔 릴레이 앞장서는 리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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