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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근무제로 여성고용 확대를
2011. 04. 06 1.bmp (369kb)
재택근무로 육아부담 줄이고… 시간제로 일자리 나누고…

《 세계적인 종합 화학기업 한국지사의 9년차 마케팅 담당자였던 이은영 씨(48)는 첫 아이 임신 8개월째에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둘째도 임신했다. 두 아이가 모두 중학교에 진학해 오전에 나가 오후 5시쯤 돌아오는 생활을 하게 되자 이 씨는 다시 일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15년간 일을 쉰 40대 여성에게 취업 문턱은 높기만 했다. 경제학 석사 학위도 소용없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중소기업 비서직에도 지원했지만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 씨 같은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민간 재교육 기관을 알게 돼 워크숍 기획가로 일을 시작했지만 임원급인 예전 회사 동기들에 비하면 연봉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



“선진국에 비해 노동시간이 길고 야근과 휴일 근무도 잦은 한국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대표적인 나라다. 육아와 가사의 책임이 여성에게 몰리는 문화 속에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며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도 많다. 사내 어린이집이나 유연근무제 같은 여성 친화적 근무 환경은 이처럼 퇴직을 강요받고 있는 많은 여성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고용 유지형’ 일자리 창출의 의미를 지닌다. 질 좋은 시간제 근무가 확대될 경우 그만큼 인력 충원이 필요해 직접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도 있다.


○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느냐가 가장 중요

지난달 28일 서울 삼성동 대웅제약 본사에서는 ‘엄마’ 직원들의 열띤 회의가 한창이었다. 올해 9월 문을 여는 사내 어린이집에 대한 논의였다. 아이들의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책을 배치하고 친환경 자재만 사용하자는 의견에서부터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 직접 병원에 데려갈 수 없는 맞벌이 엄마의 어려움을 감안해 왕진 의사를 두자는 의견에까지 ‘경험’에서 나온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당초 본사 인근 다른 건물에 만들려던 어린이집 위치가 본사 1층으로 바뀐 것도 여직원들의 ‘압력’ 덕분이었다. 인사팀 관계자는 “아이와 같은 건물에 있어야 마음이 더 놓인다는 여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1층의 사무실을 옮기고 그 자리에 어린이집을 만들기로 했다”며 “금싸라기 땅이라 임대비만 해도 상당하지만 우수 여성 인력 유치 비용을 생각하면 회사 입장에선 오히려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인 기혼 여직원 5명은 모두 육아 때문에 잠시나마 퇴직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웅제약 감성2팀의 원효재 과장(34)은 만 4세가 된 아들은 서울에 사는 시어머니에게, 이제 돌을 막 지난 딸은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친정언니에게 맡기고 있다. 둘째 딸은 주말에만 만난다. 회계팀의 정윤미 과장(34)은 최근 두 아이를 키워주던 친정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져 한국인 입주 아줌마를 찾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다른 여직원들도 거의 비슷한 사정이었다.

이들은 “사내 어린이집이 생기면 출근하면서 아이를 맡기고 퇴근하면서 찾는 게 훨씬 쉬워지고 혹시 야근을 하더라도 마음이 한결 놓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유연근무제도 좋은 대안

삼성SDS의 교육사업팀 신지연 과장(36)의 하루는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에서 시작된다. 두 아이를 모두 집 근처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 뒤다. 안방 건넌방에 마련한 ‘싱글오피스’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 사내 프로그램에 접속하면 회사에 있는 중앙서버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 작업은 집에서 이뤄지지만 결과물은 신 씨의 개인 컴퓨터가 아닌 회사 서버에 저장된다. 교육 웹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신 씨는 사내 각 팀에서 요청한 작업을 전용 게시판을 통해 확인하고 처리하기 때문에 일하는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편이다. 대신 팀 전체 회의와 각종 미팅은 ‘코어 데이’(core day·핵심 업무일)인 목요일에 몰아서 이뤄진다. 메신저로 늘 컴퓨터 접속 여부가 체크되고 그날그날 해야 할 업무가 정해져 있어 꾀를 부리기도 어렵다.
일이 많을 때는 아이들이 모두 잠드는 오후 9시 이후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과 협업이 필요해 핵심 근무 시간으로 정해 놓은 특정시간대만 제외하면 언제 일하든 총 근무 시간만 채우면 되기 때문이다. 신 씨는 “둘째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고 나서 일을 그만두려고 했던 나에게 회사의 재택근무 제안은 사회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동아줄이 됐다”고 말했다. 신 씨처럼 재택근무제를 이용하고 있는 직원은 전체 1만 명 중 100명에 달한다.

2005년 남녀고용평등우수기업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삼성SDS는 탄력근무제도 실시하고 있다. 오전 7시 반에서 오전 11시 사이에 30분 단위로 출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고 8시간 후 퇴근하도록 하는 제도부터 본사 대신 집에서 가까운 거점별 오피스로 출근해 사무를 보도록 하는 제도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각종 유연근무제 실시 여부는 팀원과 팀장이 논의해 자유롭게 결정한다. 직원들의 잔업이나 야근 정도를 부서별로 집계해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인사팀이 부서 임원에게 경고를 주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출산을 앞두고 있거나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는 여직원의 야근은 더 철저히 감시된다.

제도 실시 후 여성 퇴직률은 7%에서 4%로 줄었다. 특히 탄력근무제는 남성 직원들도 자기 계발 등을 이유로 활용하기 시작해 이용률이 30%가 넘는다. 신원준 수석컨설턴트는 “여성이 일하기 좋으면 결국 남녀 모두가 일하기 좋아진다”며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고 기껏 공들여 키워놓은 우수 여성 인력이 중도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 사회 인식은 여전히 ‘후진국’

문제는 이러한 기업이 여전히 일부에 그친다는 데 있다. 제도나 법규의 미비도 큰 원인이지만 사회 분위기 역시 유연근무제에 우호적이지 않다. 유연근무제를 할 경우 인사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사원들의 불안감, 재택근무 등을 하면 그 직원이 과연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상사들의 의구심 등이 그 예다. 이 때문에 재택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5%에 불과하고 출퇴근시간 등을 조정할 수 있는 선택근로시간제를 실시하는 기업의 비율도 12.5%로 네덜란드(88.5%) 덴마크(66.2%) 노르웨이(59.5) 아일랜드(57.9%) 등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한 유럽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다.

그러나 실제 유연근무제를 실시해 본 기업들은 이러한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가깝다고 말한다.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올라가고 업무 집중도가 좋아지면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유연근무제가 확산될 경우 여성들의 고용 유지 효과와 함께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근로자 1인당 주 40시간이 아닌 44시간을 일하게 되면 400시간을 초과 근무하게 되는데 이를 줄이면 10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시간을 10% 단축할 때 중장기적으로 고용은 13.1% 늘어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시간제 근로 비중이 1%포인트 늘어나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약 0.5%포인트 증가해 여성 친화적인 일자리 나누기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 ‘여성경제활동 30%대 → 70%대’ 네덜란드의 비결은 ▼
시청직원 977명중 330명이 시간제 女근로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있는 인구 14만 명의 도시 하를레메르메이르 시청에서 일하는 직원은 977명이다. 그러나 이 중 전일제로 일하는 직원은 절반이 조금 넘는 59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382명은 시간제 근로자다. 시간제 근로자 중 330명은 여성이다.

전일제 근로자도 모두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별로 자신의 사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주5일 근무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전일제 근로자는 1주일에 36시간을 일하도록 돼 있는데, 하루에 9시간씩 4일을 근무하고 하루는 출근하지 않는 ‘압축근무제’로 일하는 직원도 상당수다.

시청 직원들은 한 달 전 각자의 근무시간표를 짠다. 개인별로 자신의 선호근무 시간대를 설정해 컴퓨터에 입력하면 업무 수요에 맞게 근무일정 편성직원이 이를 적절히 조정한다. 특정 시간에 인원이 지나치게 부족하거나 하는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서다.

네덜란드가 20년 만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30%대에서 70%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유연한 근무 형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문화적으로 용인했기 때문이다. 특히 네덜란드는 여성 10명 중 6명이 시간제로 일하고 있을 정도로 시간제 근무가 일반적이다.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의 전유물이 아닐뿐더러 의사 교사 등 전문직에서도 필요에 따라 시간제 근로를 선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1993년 최저임금제를 시간제 노동자에게 적용하고 1996년부터 현재까지 임금수준, 보너스, 사회보장, 재교육 등 전 분야에서 전일제 근로자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법들을 도입해 왔다. 시간제 노동이 주류 노동 유형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혜택을 받은 것은 일하고 싶은 여성만이 아니다. 1990년대 5.9%에 이르던 실업률은 2009년 3.4%로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낮아졌다. 향후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든든한 노동력도 확보했다. 전일제 고용이 시간제로 바뀜으로써 전체적인 일자리는 더 늘어나는 효과도 생겼다. 김태홍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일·가정양립연구실장은 “네덜란드는 남성 중심의 외벌이 모델을 1.5인 맞벌이 모델로 바꾼 성공적 사례”라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4.6)
홈페이지 http://news.donga.com/3/all/20110406/36188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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