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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또는 여자의 정체성은 무엇에 의해 규정받는가??
2009. 06. 06 황수정 mailto:sunrise09@nate.com
여자는 또는 남자는 아니 그냥 인간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외계는 아직 내가 접해본 데이터가 없어서)시대와 역사 그리고 사회적 배경과 환경 그리고 교육에 의한 총체적 영향을 받고 규정을 받는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들도 때에 따라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심하게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에 의한 환경변화, 지구 오염에 의해 생긴 환경 호르몬 영향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북극에서는 양성을 가진 북극곰이 대거 태어났고 중국에서는 입이 두 개인 돼지가 태어났는데 이런 것도 예전에는 없던 일로 어미나 새끼입장에서는 짐승이라 그렇지 내적으로는 엄청나게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될 일이다.  여름에 피는 코스모스, 그 코스모스입장에서는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 ‘어! 내 유전 인자 속에는 한국이라는 땅에서는 가을에 태어나도록 입력되어 있는데 내가 왜 이러지??’하며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것이다.

하물며 동물이나 식물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심한 정체성을 겪는데 하물며 인간은 얼마나 많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까.

정체성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나오지만 사실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것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깨달아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정체성이란 우리가 어느 정도 철이 들고 사고가 깊어지면서 누구나 가지게 되는 의문이 아닐까?? 어떤 이들은 정체성에 대한 연구를 죽을 때까지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의 정체성을 찾는 걸 도와주는 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나날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정의내리고 쇄신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체성에 대한 정리와 답을 찾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고 자살까지는 아니지만 우울증에 걸리거나  불안하게 인생의 변두리에서 배회하다 의미 없이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의 정체성을 점검하고 재정립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또는 사회에서, 그리고 일에서 자신의 가치를 다시 세우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이건 다른 어느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으며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의지와 냉철한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어쩌면 인생은 공평할지 모른다.

돈이 많거나, 학력이 높거나, 얼굴이 잘생겼나 또는 인기가 많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전세계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의 여자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이조시대 또는 그 이전 고려나 삼국시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줘야 답이 나오지 않을까??

이조시대(이조시대라고하면 식민지사관에 의한 것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알고 있는데 이는 고조선과 단군 조선을 구분하기 위함이므로 멸망한 이조600년을 얘기할 때는 꼭 이조시대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조 600년이 결코 한국 역사의 다가 아니다.)에 나오는 삼강오륜이나 삼종지도는 고려에는 없던 새로운 중국 유교제도를 들여오면서 생긴 일종의 윤리강령으로 이때부터 급격하게 사회제도는 바뀌었고 여성의 지위나 신분은 현저하게 낮아졌다. 그리고 남아선호사상이 생겨났고 가부장제도가 생겼났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고 아놀드 토인비는 말했지만 군부에 의한 정권의 쿠데타는 14세기 초에도 있었다.

고려말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의 충신 최영장군과 정몽주를 살해하고 고려왕조의 왕씨는 모두 씨를 말리고 지방 호족들과 귀족들을 이씨조선왕조에 충성하고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큰 희생양이 필요했는데 그건 바로 왕(王)씨와 불교와 여자였다.

이조시대의 여자들은 대체로 3가지 부류로 나뉘는데 사대부집 남자의 집안에 시집을 가  인형처럼 살거나 여자가 인형처럼 살고 있는 그 집안의 하인이나 종이 되거나 아니면 그 여자가 인형처럼 살고 있는 사대부집의 남자가 밖에서 마음대로 데리고 놀 수 있는 기생이 되거나 이 세 가지 중에 하나였다.

이때의 여자들은 마음대로 연애도 할 수 없었으며 한 번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어도 재가할 수도 없었다. 이때 사대부 집안의 유일한 낙이라면 자기아래 같은 여자인데 종노릇하고 있는 다른 여자 노예보다 자기가 신분이 높다는 것 그래서 그 종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처럼 사대부집안에 시집온 자기 며느리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나마 종이나 하인을 부릴 수 없는 가난한 사대부나 일반 서민은 그 집안에 시집온 여자는 누구나 그 집의 종이 되어야 했다.)

유교에 의한 조선시대의 남녀관계는 남녀상열지사니 하며 마치 저질스러운 것인 듯 성(性)을 꽁꽁 억압해 놓고 남자만 성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터놨는데 그건 이조 이성계 왕권이 걸어 놓은 시험에 통과하는 것인데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따는 일이다.

벼슬에 올라 관리가 되면  일단 기본적인 경제적인 요건이 충족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관리는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여자를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정치적, 정책적으로  각 주요관청에는 따로 관기를 만들어 놓아서 공식적, 대외적으로 쉽게 말해서 대놓고 분탕질을 하거나 호색질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도 대외적으로 자기 딴에는 잘 나간다고 스스로 믿는 이 땅의 오합지졸 무리들은 VIP나 사업상 거래처 접대를 할 때 유흥 주점이나 룸살롱에서 질펀하게 술을 먹이고 여자를 붙여줘서 서비스를 받게 해준다고 한다. 게다가 호색질을 실컷 할 수 있는 성매매 해외 투어까지 시켜준다고 한다
대체로 건전하고 성실한 외국의 기업이나 가정에서는 중요한 손님이나 거래처 중요 고객들을 접대 할 때는 집으로 초대를 하거나 가족끼리 가든파티를 열어서 대접을 한다.)

이래서 이조시대 왕씨들은 모두 성을 바꾸어 옥씨나 전씨가 되고 불교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심심산중으로 숨어들게 됐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으므로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상식이하로 낮추고 삼종지도니 칠거지악이니 남녀칠세부동석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윤리강령으로 족쇄를 채우고 남자에게 빌붙게 만들어 놓고 남자들에게는 뒷구멍으로 더 많은 권리를 주게 되지만 결국은 이조왕조에 예속하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었다.

고려시대의 여자는 지금 현대만큼은 아니지만 연애가 자유로웠고 꼭 여자가 남자에게만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남자형제가 없을 때는 남자가 여자 집으로와 여자 부모와 살기도 하고 여자도 똑같이 재산을 분배받았으며 또한 의무도 남자와 똑같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러므로 현대에서 아직도 남자들이 병적으로 갖고 있는 집안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었다.

부부는 당연히 일부일처제였고 부부관계는 돈독한 사랑을 기본으로 했고 여자도 이름을 가졌으며 여자가 재산을 가지고 시집을 가더라도 남자에게 귀속되지 않고 여자의 재산으로 존중받았으며 재산을 물려줄 자식을 낳지 못하면 친정으로 반환되었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의 지위가 비슷했으므로 부부간의 애정에 문제가 생기면 이혼도 잦을 수 밖에 없었다.(더 자세한 얘기는 한국사 뒷이야기 박은봉 실천문학사를 참조할 것)

이조시대의 멸망은 한일합병(1910)으로 500년간의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 유교사관이 남긴 정신적, 관념적 정체성은 오늘날 21세기 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면서 남성과 여성을 똑같이 정신적 정체성을 앓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 되고 있다.
(중국을 모국으로 이조는 중국 명나라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치고 왕이 결혼을 하거나 세자가 다음 왕으로 계승하거나 할 때는 꼭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몇몇 성씨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중국에 시조를 둔 새로운 성씨로 개명을 해야 했는데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서 이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국이 자신의 조상인 줄 알고 있다. 실제로 그 시대에 중국에서 조선땅으로 이주해와 사는 중국인이 많아서도 이겠지만 문자뿐만 아니라 문화와 풍습을 중국을 따라하고 있었다. 이 것이 일제 식민지와 크게 e다르지 않다. 보통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사실 이미 고대의 단군조선시대에 가림토 문자로 사용되어지고 있던 문자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끔 우리 민족을 한이 많은 민족이라며 스스로 비하하는 모습을 아주 가끔 본다. 세계사를 보면 그 정도 굴곡과 아픔이 없었던 국가와 민족이 어디 있는가?? 이조 500년과 일제 식민사관이 우리 정신에 심어놓은 나약하고 뿌리 없는 주체성 부재의 모습이다. )


※요즘((요즘이라기보다는 적어도 내 나이 정도의 세대와 또는 그 윗세대 또는 나이와 상관없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세대) 앓고 있는 여자들의 정체성:

1. 여자의 경우 어릴때 부터 이성교제를 억압하고 조신하게 있다가 부모님이 정해준 남자와 결혼해서 남편을 따르고 남자집안의 구신이 되기를 교육받는다.
2. 여자는 처음으로 정을 준 남자 또는 함께 잔(정조를 바친) 남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설사 그 남자가 나의 가치 지향적인 남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남자를 언젠가 자신이 의도하는 데로 바꿀 수 있으리라 믿고 덜컥 결혼한다)
3. 여자는 집안에서는 당연히 희생하고 사회나 직장에서도 할 말 못하고 희생하고 순종해야지만 착하고 현명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4. 자신의 신분상승을 가져다 줄 남자가 언젠가는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다(서양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접목)
5.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의 여성성을  집 안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억압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6. 아들을 낳으면 대외적으로 위신이 서고 특히 남자 집안에 당당해진다고 생각한다.
7. 여자는 공부보다 시집만 잘 가면 되는 것이고 대학은 시집 잘 가기 위한 간판을 따는 것이다.


※요즘((요즘이라기보다는 적어도 내 나이 정도의 세대와 또는 그 윗세대 또는 나이와 상관없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세대) 앓고 있는 남자들의 정체성:

1. 어릴 때 자라면서 장남이라는 것에 또는 남자라는 것에 대단한 퍼라이버시를 가지고 성장한다.
2.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한 집안의 기둥으로서 집안의 가운을 일으켜 세워야한다고 생각한다.
3. 슬프거나 아플 때도 남자니까 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4.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스타일이 구겨지는 일이다 쉽게 말해서 가다가 안서는 일이다.
5. 영웅호색이므로 영웅은 원래 색을 밝혀야 하고 여자와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남자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6. 무엇을 하든지 여자보다 잘해야 하고 여자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열등감이 서고 남자답지 못한 것 같고 자괴감이 든다.
7. 그래서 6번과 같은 이유로 내 아내가 될 여자는 나보다 학력이 낮거나 덜 똑똑해서 나에게 고분고분하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것들도 남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 아니라 남자의 감정과 생각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들일 뿐이다.

이외에도 더 생각해보면 많겠지만 여자의 또는 남자의 이런 정체성은 기존의 우리부모가 우리 윗세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정신적 유물이고 그 유물은 또 그 이전 세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다.

물론 이런 사고방식은 정확하게 현세대를 대표하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마 지금은 40대는 조금 공감하고, 50대는 더 공감하고, 60는 아마 절대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조시대가 멸망한지 벌써 100년이 되어가고 있다. 중간에 일제 식민지와 내전을 겪으면서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6.25내전 이전으로 돌아가면 일제 식민지가 있고 일제 식민지 이전으로 돌아가지 이조시대의 유교의 억압정책이 있다.  이 땅의 여성과 남성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무엇이 답인지도 모르겠고 무턱대고 서양의 남녀가치관을 따라 가자니 몸이 안 따라 주고 이조시대로 돌아가자니 답답하다. 그러니 정체성을 혼란을 가지는 건 당연하고 남자나 여자나 혼란한 가운데 인터넷과 정보화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몇 위라는 둥 몇 초 만에 몇 쌍이 이혼하는 지등 결혼한 몇 쌍 중에 몇 쌍이 이혼하는 지도 모르겠다.
다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남녀의 의식구조와 우리 부모의 의식구조 그리고 사회의 의식구조가 바뀌거나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는 한 결혼이란 다만 허황된 유토피아고 서로 다른 의식이 부딪혀 다시 박살나는 전쟁의 최전방이 될 것이다.

이조시대에 만들어진 호주제도가 겨우 2005년도에 한국성씨총연합회 내지는 족보깨나 있다는 집안들의 문중어른들(?)로부터 엄청난 반대와 협박을 무릅쓰고 폐지되었다.
그 집단이 무엇이든  한번 기득권 집단에 넘어간 기득권은 피기득권에 쉽사리 그 기득권을 넘겨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은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더한, 말하기도 역겨운 이슬람 문화의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보다 낫기는 훨씬 낫다. 그렇다고 자족할 일은 아니지만)


여자들이 여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가장 심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가부장적인 집안에 예속이 되고난 후 시댁과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부터 이다. 그 이후로 다시 심하게 느끼게 되는 건 그 제도가 싫다고 그 제도를 깨고 이혼을 하고 사회에 나온 때이다.

어떻게 보면 결혼하기 전에는 가부장제도((그건 철저히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진 같은 여자의 일방적인 희생에 의해 성립될 수 있었던)의 그나마 비호 속에서 지내다가 결혼을 하면서 한 집안의 최하위 순위로 들어가고부터 처음으로 결혼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었고 이혼을 하면서 이제는 사회에서 최하위 레벨로 떨어지는 정체성을 혼란을 느낀다.

어떤 철저한 가부장적인 집안에서는 여자의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결혼과 동시에 사회활동은 접고 집안에서 가정에만 충실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인양 강요한 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결혼과 무관하게 여자들이 다 직업을 갖지만 한때는 그것이 미덕인 냥 덕목인양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다.(그래서 시댁에서의 최하위의 역할을 강요받게 된다. 하지만 그 대신 사회에서의 레벨은 나름대로 보장받는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억압을 강요 해왔던가.
그래서 우리나라의 아들들은 자기 미래의 배우자상을 어머니같이 모든 걸 희생하고 자기에게 베푸는 여자를 꿈꾸지만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이 땅의 딸들은 절대 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맹세하며 자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아들들에게서 자신이 희생한 삶의 모든 것을 보상받기를 바란다. 아들에게서 또는 아들이 데려온 며느리에게서..

그런 아들과 딸이 만나서 어떤 결합이 될지는 사실 뻔한 일이다.

그나마 여자들이 결혼하기 전 연애 경험이 풍부하고 남자에 대해 사회에 대해 잘 아는 경우 자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 아닌 지 자신과 잘 맞고 어려움이 있어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없을 지를 잘 판단하여  결혼해서 잘 산다고도 한다.(아마도 그녀들이 발견한 남자란 남자들 중에도 의식이 깨어있고 덜 권위적이며 가정에 충실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며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아닐까)

하지만 대부분의 나뿐만 나와 비슷한 세대 또는 그 위 세대에서는 이성에 대해 어릴 때 부터 사귀어 볼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은 초딩때 부터 벌써 생리를 시작하고 남자친구를 사귀는 시대이다. 지금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아이가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성교육이 아닌  피임교육을 시켜야하는 시대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연극배우  최정원씨는 어느  TV프로에서 자신은 딸이 성인이 되면 아침마다 콘돔을 챙겨주는 오픈된 엄마가 되고 싶다 라고 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 뉴스를 보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초딩에게 아침에 학용품을 챙겨주듯이 성인인 딸에게 아침마다 콘돔을 챙겨주는 엄마. 물론 상징적인 얘기겠지만 사실 좀 억지스럽기도 하다.(차라리 한 달에  총 몇 개가 필요한 지 통계를 내서 한 달에 한 번 한 꺼 번에 챙겨주는 게 낫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하지만 얼마 오래된 영화‘리치몬드 연애소동’이라는 미국 리치몬드라는 지역의 하이틴을 주제로 한 영화였는데 남자에 대한 첫 경험과 성에 관한 영화였다.

그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인 1982년에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지금 우리나라 기성세대와 지금의 내 의식보다  훨씬 앞서 있다.

어릴 때부터 이성교제를 너무 억압하고 성적으로 구속하다보니 성인이 돼서 어쩌다 만나서 한 번 정을 준 남자를 자기와 맞지도 않고 어쩌면 문제가 있는 남자일지도 모르는데도 그냥 결혼해야 된다고 믿는 여자.

이조시대 일부다처제의 의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남자는 본능적으로 자기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고 싶어 한다는 자기 합리화로 결혼 후에도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바람피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자.

어릴 때부터 자유로운 이성 교제로 진정으로 자기에 의미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면 부적절하고 옳지 못한 관계를 과감히 끊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결혼이라는 것도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지, 그렇지 못한 지에 대한 확신 없이 결혼해서 나중에 더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도 줄어들 것 같다.

아무튼 여자의 정체성이란 남자의 정체성과 사실 무관하지 않다.
또한 자식은 부모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고 남편은 아내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훌륭한 CEO 는 직원들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컴퓨터는 키보드와 무관하지 않고 화초는 햇빛과 무관하지 않고.

현재의 또는 미래의 부부관계는 상호의존적 변화, 발전 가능한 관계이어야 하고 수직보다는 수평적인 관계 그렇지만 평행선적인 관계보다는 나선형 관계, 주종적 관계보다는 동반자적 관계 이어야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비단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관계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 직장에서의 상사와 부하관계, 고객과 회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지만  상호 어드바이스가 가능하고 서로에게 가이드해주고 코치해주는 관계가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우리의 정체성은 서로에 의해서 더 단단해지고 더 굳건해지고 유기적으로 상호의존하면서 변화, 발전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래야 한다라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물론 이 모든 관계의 근간엔 사랑이라는 가치와 긍정적, 우호적 심적 태도가 깔려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고의 변화와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고의 틀은 쉽게 바뀌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는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변화하거나 변화당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 상태로 죽을 수밖에 없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100번을 재혼한 들 무슨 소용 있으리.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끔 선을 보러 나간 자리에서 남자들은 아직도 그런 말을 한다. 재혼을 급하게 해야 하는 제일 첫 번째 이유는 의식주의 해결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밥하고 빨래하는 문제의 해결이라는 뜻이다. 말을 하고 난 후 좀 있다 그제야 수습이 안 되는 듯 외롭기도 하고 사랑을 주고 싶기도 하다라고 덧붙인다.

그래도 초혼에서처럼 집에서 하라고 해서 또는 우리 어머니에게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해서  또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서 라고 대답하지 않아서 다행이다.(요즈음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씨를 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그래도 없을 같다.ㅋ)

다시 한 번 진정한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남자가 자라온 환경은 어릴 때부터 남자는 절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걸로 교육받아왔다면  부엌에 들어가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여자가  수명이 다한 전구를 처음으로 혼자 새로 끼워야하거나 벽에 못을 혼자 박아야 하는 일 만큼이나 두렵고 힘 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또는 여자가 이혼 후 처음으로 생계를 위해 아무 사회 경험 없이 일을 해야 했던 그 첫 순간만큼이나 두렵고 어려운 일 이었는 지 모른다.

인생의 목표가 없는 사람은 평생 목표가 가진 사람의 노예가 돼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이나 읽었던 최재천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에서 보면 놀라운 얘기가 나온다.

어떤 기생충은 동물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 동물에 영향을 끼쳐서 정상적인 상태라면 도저히 할 것 같지 않은 행동을 하게끔 만든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달팽이 같은 동물은 건조한 곳에서 오래 살지 못하는데 어떤 기생충에 감염이 되면 매일같이 자꾸 바위위로 기어오른다.
그래서 갈매기들의 먹잇감이 되기를 자초한다. 궁극적으로는 갈매기의 몸속에 들어가야만 번식을 마칠 수 있는 기생충에 이용당한 것이다.

또한 예로는 평소에 풀숲을 다니는 개미가 어떤 기생충에 감염이 되면 자꾸만 풀잎위로 기어오른다. 그래서 풀을 뜯는 소나 양의 장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초식동물의 배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기생충의 농간에 놀아난 것이다.
그리고 멀쩡하게 물속에서 잘 살던 물고기도 기생충에 감염이 되면 자꾸만 수면위로 올라가서 스스로 왜가리의 먹잇감이 된다.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요즘 많은 진보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만 생물학적인 면에서의 숙주를 조정하는 기생충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해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과 관념과 조직을 생각해 보라.
그 뿐만 아니다. 알량한 미끼와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자신의 소중한 걸 내어주거나, 사욕에 눈이 멀어 패가망신하거나, 평생을 쌓아 온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거나...

우리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 지, 어디로 가고 있는 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이 나갈 방향에 대해 직시하고 수시로 우리의 가치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살든 삶은 계속되겠지만 그리고 어떻게 살라고 타인에게 강요할 순 없지만  좀 더 의미 있게 가치 있게 살아야 하는 건 분명한 건 같다.

그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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