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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게 가장 큰 행복은 내일 아침을 모르는 것인가
2006. 04. 07 김정도 mailto:jdjudge@hanmail.nethomepage:http://jd.wo.ro
사회 정의를 외면한 검찰의 불공정 수사로 빼앗긴 어느 사회적 약자의 ‘행복론’

오늘 내게 가장 큰 행복은 내일 아침을 모르는 것인가

"못 견디게 괴로워도 잊지 못하는..."

 요즘 처지가 하도 답답하여 어제 저녁 동네 수퍼 앞 의자에 홀로 앉아서 "못 견디게 괴로워도 잊지 못하는..."는 노래를 처량히 부르고 있었다. 그때 약 7미터 앞 도로변에 검은색 승용차가 서면서 내리는 여자가 직감적으로 아내 모습 같이 보였다.
 순간 나는 마치 무슨 죄를 지은 것 같이 마음에 동요가 왔다. “ 설마 내 영어학원이 여기 있는 것을 아내가 아는데, 혹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매우 당혹스러운 순간이기도 하였지만, 충분히 지나가는 길에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내도 일행이 있는데 나를 보면 민망할 것 같아 얼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손가락 사이로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보았지만 틀림없는 사랑스런 아내 모습이었다. 30여 년간을 거울 같이 마주보고 살아온 아내 일진대 저 멀리 빠르게 스쳐가는 아내의 뒷모습.

어찌 모르겠는가? 꿈에도 그리던 아내를!

 여기 앉아서 만날 수가 있다니 꿈만 같았다. 그러나 그 반가운 순간도 잠깐. 가출한 지 3년이 넘어서 보는 반가운 아내였지만 “여보, 나요!”라며 꼭 껴안거나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아내가 흰 반소매에 안경을 쓴 미남형 남자 옆에 다정히 서있었고 그 옆에 젊은 커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 커플들과 웃으면서 헤어지는 악수를 하였다. 아내는 연신 행복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쳐다보면서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마치 그전에 나를 다정한 미소로 쳐다보며 속삭이던 모습 그대로였다. 순간 나는 그 남자가 그 옛날 나의 모습으로 착각 할 정도였다. 너무 다정해 보였다. 아내의 예쁜 모습도 그 옛날 그대로였다.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서있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는 것이 묘하고 착잡하면서도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 순간 바보스럽게 허탈한 웃음까지 나왔다. “사회정의와 검찰에 애정을 가진 결과가 무엇인가? 안산도시개발과 동대표등에 좋은 일만 해주고 집은 같이 투쟁하던 ‘동지’에게 사기 당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아내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에 생각이 미치자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들로 연속돼도 정치권력이나 검찰은 물론 우리 사회도 모두 나 몰라라 한단 말인가”하고 탄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리 비참해도, 당신이나 행복하게 잘 살아!

 그러나 곧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목이 콱 메여 손바닥으로 내 입을 꼭 틀어막은 채로 그녀에게 외쳤다. “여보 이왕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됐지만, 당신이나 행복하게 잘 살아, 그동안 내가 당신 너무 고생시킨 것 미안해 여보!”. 다른 남성이라면 나와 같이 아내를 생고생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혼까지 한 그녀이기에 나를 봐도 나처럼 절실히 생각은 안 하겠지만 약 7미터 앞에 두고 의자에 홀로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목메어 하는 나를 못본 듯했다. 약 7분후 서로 작별 후 아내가 검은 승용차를 운전하고 그 옆에 그 사람이 타고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도로 앞이 전혀 막히지도 않았는데도 마치 나를 보고 기다린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차는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여보 나 여기 있어!”라고 손을 들고 나가려는데 차는 떠나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아내 차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그녀를 보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오히려 그동안 그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하여 처음 가늠할 수 있는 순간이 된 것으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본 상황으로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아내도 나와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다는 외는, 아내가 재혼을 했는지 여부는 전혀 들은 바도 알지도 못하였다. 단, 지역난방사건이 긍정적으로 해결이 된다면 그때 아내에게 하고픈 말을 하려고 사건 해결에 몰두하고 있는 나의 지금 심정은 참담 그 자체였다.

아내가 우리의 다정했던 모습의 사진들을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담아

 나는 얼마 전 “검찰이 우리를 가를 때까지는 나에게도 사랑하던 아내와 가족, 그리고 집도 있었다” 란 검찰비리관련 글을 청와대등 각 게시판에 올렸다. 정다웠던 아내와 가족의 사진이 실린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공개한 것이다. 바로 지난 달 경기경찰청에 지역난방사건비리 관련자들을 고소한 터에 요즘 들어 이제까지와 달리 경찰이 수사하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난방 사건이 잘 해결 될 수도 있다는 야무진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왜 아무런 소식이 없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가늠할 수 있게된 셈이다.
 이런 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한 주부 학생은 “선생님 지역난방사건이 잘 해결되고 사모님에게 보상을 해준다면 다시 돌아 올 거예요. 요즈음 사람들은 약아서 안 되겠다 싶으면 자기와 가족 밖에 모르는데 선생님이 하도 완강하시니까 한번 혼나 보라고 그랬을 거예요! ”하고 말이다.
 그러나 오늘 목격한 상황은 국가가 어떻게 보상을 하더라도 이전의 사랑하던 아내가 돌아오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불길한 느낌을 현실 속에서 확인시켜 준 셈이다. 또 가뜩이나 ‘말하는 식물인간’이 되어 답답하고 우울한 나의 가슴을 마구 짓이겨 놓았다. 한때 아내는 나 없이는 숨도 쉬기 어렵다며 그 힘든 지압으로 나의 건강을 되찾게 하였었다. 나는 그 일에 대한 고마음 등으로 남편으로서 당연하고도 순수한 의미의 보상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런 기회마저 잃었다는 현실이 더욱 참기 힘들게 느껴진다. 정말 가슴이 아프고 메어진다.

사실 7년이 지나도 비리 관련자가 건재하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내의 재혼 유무를 떠나 난 아내를 당장 만나도 달리 할 얘기가 없다. 아내는 가출 전 “여보 당신 이거 언제까지 할 거야? 손해배상이 나오면 얼마나 나온대? 당신은 좋아서 하지만 우리 가족은 뭐야! 당신 이거 계속하면 이제는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등등의 절실한 호소를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지역난방사건 조작의 불의를 바로 잡겠다고 나선 처지에서 그저 “지역난방사건이 해결 될 때까지 조금만 더 참으시오. 그러면, 고생한 보람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이오.” 하고 달래기만 하고 ‘나’를 따라줄 것만 요구했었다. 막연히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려던 미련한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나로선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필요한 원칙이고 그 원칙은 반드시 지켜지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마다 애써 인내 할 수밖에 없었던 나는 오늘날 어떤 모습인가? 나를 ‘가정파탄’에 이르게 한 무소불위의 검찰, 그리고 그 검찰의 개혁공약에 절망하고 있지 않는가! 또 이런 본질 적인 문제와 더욱 거리가 멀어져가는 노무현 정부와 당리당략으로 검찰개혁에 여태 망설이고있는 여, 야에 대한 배신감으로 순간순간 피가 역류된다고 느끼지 않는가? 그저 철밥통인 검찰과 안산도시개발, 안산시청 등에서 비리를 저지른 관련자가 다들 건재하다는 소식뿐, 사건이난 지7년이지나도 단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나를 추스르며 다시 힘든 달리기를 할 뿐

 처음에는 아내 가출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만약 지금까지 아내와 가족들이 나와 함께 있어 주었다면 무소불위한 검찰의 만행에 김정도란 한 개인이 비참한 ‘생체실험(a medical experiment on a living body)’의 대상이 되여 사회적 질시와 냉대, 그리고 이웃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모습을 가족들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랑하던 아내와 가족으로선 더 비참한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하여 ‘원칙이 통하는마을’을 조성 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더니, 지역난방사건의 실체적 규명을 같이하던 후배에게 아내 가출 위로를 빙자한 사기를 당하기까지 하였지 않은가? 변호인의 터무니없는 거짓 변론으로 집행유예로 그는 풀려났고, 공판 검사마저 “항소 잘못 하면 무죄가 나올수 있다”란 석연치 못한 항소 포기로 나는 집에서 쫓겨난 처지가 아닌가? 이제 사기금원은 단 한 푼도 못 받고 집도(학원)도 없이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었다는 말을 할 용기나 염치도 없다. 이렇듯 비참하게 홀로 된 상황을 그저 내 몫으로 받아드린다. 그러면서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내를 체념하고 나를 추스르며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아니겠지만 나는 그녀의 허물마져 사랑하였기에 더욱 가슴이 아파 온다.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아내 가출보다 원칙 지키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

 오늘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나? 솔직히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동안 지역난방사건이 원만히 해결되고 아내가 돌아와 주었으면 하는 실낱같던 희망과 꿈이 무너진 셈이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미련하여 가족들이 당한 고통도 컸을 텐데, 그러나 나와의 삶과는 달리 아내가 더 이상 경제적 고통을 받지 않어도 될 것같은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는 것을 확인하니 지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가 이산가족도 아닐 터인데 꿈에도 그리던 아내를 눈앞에 두고도 “여보 나요!”라고 말할 수 없는 당장의 한심한 꼴을 그녀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 이처럼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는 아내 가출보다 원칙 지키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왜 검찰이 안산 지역난방 사건을 조작하거나 은폐 했는가” 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여전히 소중한 것이다(항소 포기도 석연치 못함) 대검의 국민의 소리 게시판 등에서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원성쯤이야 아랑곳 않는 노 정권과 여, 야가 과연 이런 식으로 정권을 계속 유지하고 또다시 검찰이 권한을 다시 거머쥔다 한들 ‘원칙과 상식을 사랑하는 국민들’ 에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오늘따라 너무 허탈하고 착잡하다. 정말 오늘은 못 마시는 소주지만 한 병을 사서 마셨다. 소주가 너무 달았다. 오늘 내게 가장 큰 행복은 내일 아침을 모르는 것인가?

첨부파일 : 누가 이꿈을 앗아 갔는가?(아내와 다정했던 시절의 사진참조)
2005년 8월 9일  안산 김정도  EM:  jdjudge@hanmail.net  / MP: 010-7145-5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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